나에겐 무슨향기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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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2024년

남편의 발을 닦어준 후

국화향. 2024. 12. 21. 11:16


남편의 발을 한번 닦아줘야지
늘 마음이 그랬었는데 실천하기까진  좀 시간이 흘렀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을 소파에 앉게 한 후 따듯한 물을 들통에 받아  발을  담가 불리게 한 다음 세숫대야를 가져다 발을 한쪽 옮기게 한 후
발뒤꿈치 각질을 말끔히 없애준 후 반대쪽도 그리한 다음 발을 행구어준후 수건으로 물기를 다 없애주고 로션을  손으로 묻혀  한참을 발을 쓰다듬듯  로션으로 촉촉해지게  마사지를  해 주었었다.
마치 남편의 발도 내 것의 일부인양 ᆢ
가족을 위해 한시도 쉼 없이 열심히 걷고 뛰며 수고하고 애쓴 남편의 발이다
남편의 발은 작고 곱상하지 않고
손도 발도 커다랗고 거칠고 흡사 막노동하는 사람의 손 발 같으나.
난 이따금 남편의 거친 손에 애정을 갖고 손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곤 한다.

발을 씻어준 후.
남편은 많이 달라졌다.
고맙다 했고 나보고 이쁘다고도 했으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지금까지 눈만 마주치면 사랑한다고 하고 있다.

지난번 대만 여행 갔던 첫날밤
여러 사람과 좀 과음을 했던 그날.
화장실에서 씻다가 미끄러지는 큰일을 겪었었다.
그날 내 심장이 떨어지는지 알게 엄청 놀랐었는데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었다.
하여 바닥에 대형수건을 다 깔아주고 씻고 나오게  했었는데
그다음부터는 지금까지
저녁에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씻지 못하게 하고 있다 .
그냥 자고 아침에 씻게 한다
전에 젊어서는 가득 취해도 다리에 힘이 없진 않아서 그런 건 신경 써본 일도 없었는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확실히 달라지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여행 중에 그리 빨리 걷지 못하고 느그적 느그적 걷는다고 내가 구박을 하며 손을 잡고 챙기고 다녔는데 집에 와서 왜 그랬냐 하니 다리가 아파 힘들었다 하여 다리를 살펴보니 허벅지가 여행하기 전 어디서 부딪혔는지 아주 커다랗게 멍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무척 아팠으리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뒤늦게 약을 발라 문질러 주며 며칠을 지나니 멍이 다 빠지고 다리는 안 아프다 했다.
매일 나만 아파서 병원을 다녔는데
이제 보니 남편도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데 워낙 무던한 사람이라 말을 안 했던 것이다
요즘은 잘 살피며 더 애틋하게 맘을 쓰고 있다.

금요일 꾸리아 회합 있던 날 ㆍ남편은 아침에 퇴근한 날.

14팀이 모여 회합을 하니
우리 4 간부들은 한 시간쯤 일찍 나가 준비할 거 하고 회의실도 따듯하게 준비할게 많으니
집에서 설거지  끝내고 바로 성당엘 갖다.

미사 후 회합 끝내고 넷은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들을 나누곤 차도 마시고 하는데
식사를 한 후 성당엘 또 가서 의연금 걷은 거 세어서 은행에 입금시키는데 굳이 넷이 가질 않아도 된다.
내가 회계에게 나 집에 먼저 갔으면 하는데 괜찮겠냐고 하니 가시라고 했다
하여 차를 우리 집 가까운 데서 세워줬음 했는데
약간 수다쟁이 단장이 한두 마디 하는데

"몰 아직 그러고 사냐고 이제는 점심은 혼자 차려먹으라고 하지 때마다 차려주느냐 "
해서
내가
"그러게 말이야 "
하고 목소리를 익살스럽게  하고 답을 했고 또 그녀는
"자기 남편 너무 마누라 밝히는 거 아냐?"
하기에 난 또
"그런가 봐  "
하며 받아치고는 내렸는데

영  기분이 더러웠지.
게네들이 가면서 뒷말들을 했을 것 같은 게 ᆢ
그냥 그래 그럼 먼저 들어가 같이 차 마시면 좋을 텐데   ᆢ라고 해줬으면 참 좋으련만.

그 기분은 저녁때까지 이여졌다
늘 이렇게 하는 건 진짜 아닌 거 같아서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했다.
나같이   신경 안 쓰고 산 사람들은 이해 못 할 것이다 내가 이만큼 성당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그만큼 노력해서 지금에 있는 건데
그렇다 해도 내가 해야 할 기본은 충실히 해가며 또 기회를 봐가며 차차 시간을 늘려가고 또 남편도 맘 편하게  해 줄 것이기에 나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난 딴사람보다 더 일찍 나가서 더 많이 일을 하기도 한다
라고 전했더니
전화가 와서 자기는 그런 뜻은 아니었다고 사과를 하여 잘 마무리는 지었는데
아마도 나를 생각보다 까칠하다고 할 것이다
그날 여러 가지가 좀 그랬고
난 내 자리를 곤고히 하기 위해 야무질 필요가 있었다.

누가 어쨌든  내 가정의 평화는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늘 고마운 남편이니 나도 고맙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