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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떠남(exodus)의 여정, 감사의 여정 - 이수철 신부

국화향. 2014. 3. 23. 08:22

 

 

 

2014.3.22. 토요일 자치수도원 승격 감사미사

사부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 창세12,1-4ㄱ 요한17,20-26

 

 

 

 


 

떠남(exodus)의 여정, 감사의 여정

-이제 다시 시작이다-

 


어제 사랑하고 신뢰하는 제 후배이자 도반인 최 종근 빠코미오 신부가 원장좌 자치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비장(祕藏)의 무기(武器)를 꺼내 주신 느낌입니다. 경사 중의 경사요 하느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리고 오늘 많은 분들을 모시고 대망하던 '자치수도원 승격 감사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아랫집 수녀원의 모든 수녀님들이 두 개의 꽃다발을 들고 신임 원장과 퇴임하는 저에게 인사 차 방문했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신임원장의 꽃다발과 '감사합니다.'라는 제 꽃다발에 붙은 내용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치 신임원장과 퇴임원장의 아름다운 조화를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순간 '떠남의 여정'은 동시에 '감사의 여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면 1988년 7월11일, 요셉수도원에 부임한 날부터 오늘까지 만26년 동안 제 삶은 부단한 떠남의 내적 여정이자 감사의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셉수도원 설립25주년'화보집에 실린 제 회고사의 첫 주제가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는 것인데 마침내 '때가 되자' 하느님은 저를 원장직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1992년 3월부터 분원장으로 시작하여, 1998년부터는 원장좌 예속수도원 원장직을 지금까지 수행했으니 만 22년만에 원장직의 성무(聖務)에서 떠나 새출발의 내적여정에 오르게 된 셈입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크고 작은 시련도 많았지만, 이렇게 탄탄한 기초를 마련해 놓고 떠나니 하느님의 은혜가 감사할 뿐입니다. 

 

원장직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 '아, 여기 요셉수도원에서 26년 동안 알게모르게 지었던 모든 죄도 용서 받는구나'하는 깨달음이 기쁨의 전율처럼 스치고 지나면서 한없는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원장직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제 원장직의 짐을 내려놓아 주셨습니다. 하느님 안에서는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일은 없고 언제나 제자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떠남의 시작입니다. 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라는 자작 고백시의 셋째 연이 생각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사랑의 강(江)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원장직은 내려놓았어도 죽을 때까지 평생 하느님 바다 향해 떠나는 사랑의 강이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의 삶 역시 떠남의 여정으로 요약됩니다. 고향에서 떠나 로마로, 타락한 로마를 떠나 수비아코로, 수비아코를 떠나 몬테카시아노로, 몬테카시아노를 떠나 하느님 계신 하늘로의 복된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삶을 입당송은 다음처럼 요약합니다.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얼을 지니셨기에 세상의 영화를 업신여기고 버렸도다.“

세상의 영화에 초연했던, 참으로 아름답고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 성 베네딕도였습니다. 모든 떠남의 귀착점은 바로 죽음입니다. 일상에서 떠남의 내적여정에 충실할 때 마지막 하느님 향한 복된 죽음의 떠남입니다. 1독서의 아브라함의 복된 떠남도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에 지체없이 떠나는, 마음은 '영원한 청춘'의 아브라함입니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축복의 말씀을 듣고 떠나는 복덩어리 아브라함입니다. 무엇보다 공동체에 일치의 선물을 남기고 떠나는 죽음보다 큰 선물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유언과도 같은 고별담화 역시 믿는 이들의 일치를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죽음에 앞서 이렇게 일치의 선물을 남겨놓고 떠나는 주님의 떠남은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지요.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 놓은 참 좋은 선물이 고별담화의 기도와 더불어 이 거룩한 성체성사입니다. 하느님의 간절한 소망이자 꿈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의 죽음 장면 역시 참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성 그레고리 대 교황의 대화집에 나오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이 세상과 하직하기 바로 육일 전에 자기 무덤의 문을 열게 하였다. 그리고 성인은 심한 오한을 느끼셨고 그의 몸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더욱 야위고 쇠약해져만 갔다. 육일이 되던 날에는 제자들에게 수도원 성당으로 자기를 안내하도록 부탁하시고, 성당으로 가서 주 예수의 성체와 성혈을 영하고 이 세상과 하직하기 위하여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하시더니, 영성체를 끝마치신 다음 수사들의 팔에 기대어 자기 몸을 가누시고 일어서서 양팔을 하늘 높이 들고 열심히 기구하면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공동체의 일치를 선물로 남겨주고 떠나는 이런 거룩하고 아름다운 죽음보다 더 복된 죽음은, 선물은 없습니다. 축복 받은 이라는 '베네딕도'라는 이름 그대로 공동체에 큰 복을 남기고 떠난 복덩어리 성 베네딕도입니다. 모든 판단의 잣대는 내 눈이 아닌 하느님의 눈, 공동체의 눈입니다. 저역시 공동체에 일치의 평화를 남기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공동체가 보기에 좋은 떠남을 갖게 되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할뿐입니다. 이제 다시 하느님을 찾는 새로운 떠남의 내적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좋으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늘 새로운 시작의 떠남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주님, 저희가 바라던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시편33,2). 아멘.

 

 

- 이수철(프란치스코)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출처 : 예수를 따르는 길~☆
글쓴이 : 도마(토마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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