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무슨향기가 날까?
배론성지순례 본문
배론(舟論)은 치악산 동남 기슭에 우뚝 솟아 있는 구학산(985m)과 백운산(1,426m)의 연봉이 둘러 싼 험준한 계곡 양쪽의 산골 마을로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리었다. 이곳은 조선교회의 교우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굽는 육체노동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며 그리스도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다. 1866년 병인박해 전에 배론은 6개 마을로 - 아랫배론, 중땀배론, 웃배론, 점촌배론, 박달나무골, 비득재마을이 있었으며, 약 70여호가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신학교육[편집]
1855년에는 천주교 사제 양성을 위한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져 1866년까지 신학 교육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1861년에 선종한 한국교회 역사 두 번째 천주교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또한 장주기를 비롯한 여러 명의 순교자들이 살았던 성지이다.
배론성지에는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이 보존되어 있으며, 옛 성 요셉 신학교 터가 복원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또한 해마다 원주교구 사제, 부제 서품식이 거행되고 있으며, 순교자 최양업과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을 역임한 지학순 주교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성지 인근에는 순교자 남상교의 유택과 봉쇄 수녀원이 자리잡고 있다. 샌드블라스트 기법을 활용하여 순교자 최양업 일대기를 벽화에 입혔으며, 기존 봉안당 이미지를 깨끗하고 친근한 공원식 봉안당으로 제작벽화 제작-예성기획.
배론에서 1801년 황사영 순교자가 조선 로마 가톨릭교회의 박해 상황을 베이징 주교에게 알리고자 백서를 썼다
며칠동안 봄비가 추적거리고 내렸는데
오늘은 아주 화창하여 순례길이 한층더 즐거웠다.
성모병원 봉사자들을 위한 일년에 한번은 성지순례를 떠난다.
우리병원이 비교적 봉사자들이 많아 관광차 네대가 세번에 나누어 간다.
아침 일찌기 집을나가 병원에 도착하니 일곱시반
인원체크하고 간식챙기고 하였는데도 버스가 우리보다 더 늦게와서 삼십분도 더 기다려
출발을 했다
시작기도와 묵주기도 5을 바치고 각자 조용히 이야기들을 하고
또는 나처럼 정신없이 졸고 또 졸기도 하고.
그러다 도착하여 미사를 드렸다.
배론성지의 신부님의 정성스런 미사집전으로 다들 감동을 받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제리먼저 눈에 띄는것이
각종 나물,곡물류등 그곳에서 체취하고 수확? 한것을 내놓고 파시는 동네상인분들이다.
얼핏 듣기로는 그곳에 납골당을 만드는데 반대하시는 동네분들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고 그 과정에서 타협점이 저 자리에서 장사를 할수있게 하여
원만하게 진행이 되엇다고 한다.
그후 동네분들이 거의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고 같이간 신자분들의 말이다.
우리가 갔을때 장이 펼쳐져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가 귀갓길 버스에 오를때 저분들도 자리를 접기 시작했다.
다른 관광지는 국산이라고 믿기 어렵게 많은 것들이 수입산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내놓는다는 소문인데
그래도 이곳은 성지 앞마당이니 안 그렇겠지란..생각도 해 본다만 생각이 맞기를 기대한다.
황사영백서
저 토굴이 백서를 쓴 토굴
이 토굴안에 위에 백서가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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